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유럽 혁명 (문단 편집) === [[몽골 인민 공화국]]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democracyspeaks.org/2015-10-02%20Remembering%20S.Zorig-A%20Leader%20of%20Mongolia%E2%80%99s%20Democracy%20(2).jpg|width=100%]]}}}|| || {{{#000,#fff 몽골 민주화 시위 당시 사진, [[울란바토르]], 1990년. 목마를 타고 확성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[[산자수릉깅 저릭]]이다.}}} || [[동아시아]]의 공산국가지만 몽골은 [[소련]]의 [[위성국]]에 가까웠기 때문에 여기에 기술한다. [[욤자깅 체뎅발]]의 뒤를 이은 [[몽골 인민당|몽골 인민혁명당]] 서기장 잠빈 바트뭉흐는 소련의 [[페레스트로이카]]를 모티브로 '신칠렐'이라는 개혁/개방 정책을 추진하나 페레스트로이카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국민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[[소련]]의 [[모스크바]]에 유학 중이던 대학생 [[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]]와 몽골 국립 대학교의 강사 [[산자수릉깅 저릭]]이 몽골 민주동맹을 결성해 [[1989년]] [[12월]] 수도 [[울란바토르]]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으며 이 시위는 다음해 [[1월]]까지 계속되었다. 결국 [[1990년]] [[3월]]에 바트뭉흐를 포함한 몽골 정치국원 전원이 사퇴하였다. 당시 바트뭉흐는 정치국원들의 무력진압 요구를 묵살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겨주었다. 그리고 몽골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[[몽골 인민당]]이 압승을 거두었으나 [[1996년]]에 [[복드 칸국|75년만의]]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야당인 민주동맹이 총선에서 승리하였다. 대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[[민영화]]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몽골은 경제규모가 너무 작아서 민영화시킬 생산수단이 없었던 탓에 경제적으로 아주 큰 문제를 겪지는 않았다. 그렇지만 물가 상승 문제에 시달린 것은 매한가지였기는 했다. 한편 [[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]]는 [[1998년]] 겨우 '''35세'''라는 나이에 총리로 선출되었으나 [[몽골인민당]]의 반대로 8개월만에 물러났다. 2004년에 다시 총리직에 올랐고 2009년 46세의 나이로 [[몽골 대통령|대통령]]에 당선되었다.[* 2008년 7월에는 몽골에서 부패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는 2000년대 여러 유라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났던 [[색깔혁명]]의 영향을 받아서 나타난 반정부 시위였다. 이때 소규모의 폭력이 일어나기도 했었다.[[https://www.ytn.co.kr/_ln/0104_200807020247225528|#]]] 산자수릉깅 저릭은 민주화 이후 첫 자유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[[1998년]]에 [[산자수릉깅 저릭 암살 사건|의문의 괴한이 쏜 총탄에 암살당했다.]] 암살 직후에는 단순 [[강도죄|강도]] 범죄로 알려졌으나 증거가 불충분하고 애초에 범인이 잡히지 않아 이후 [[미제사건]]이 되었다.[* 설령 진범이 잡힌다고 해도 몽골 기준으로도 [[공소시효]] 기간이 소멸되어 처벌도 불가능하다. 물론 한국의 공소권 없음에 해당하는 처분을 통해 그 사람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수는 있겠지만 이전에 현재까지도 누가 범인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은 게 문제다.] 이후 몽골은 [[민주당(몽골)|민주당]]과 [[몽골인민당]]이 정권을 주고받는 [[양당제]]가 고착되었으며 [[2021년]] [[몽골인민당]]이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